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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 01:00 - 꿈꾸는 섬 공작소

어느 밤, 제주.



서른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남자는 나이 마흔에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되었다.

별 생각없이 대충 살던 남자는 나이 마흔에 여전히 여기저기 떠돌면서 살고 있다.

‘낼모레 마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틀밤이 지난 후에는 마흔이 되는 남자 둘이 술을 마시기로 했었다. 거창하게 ‘낼모레 마흔 파티’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조용히 마흔이라는 숫자를, 그동안 살아낸 시간을 돌아보고 싶었다. 맥주 잔을 앞에 두고, 이제는 잊혀진 사람들을 얘기하고, 언제가는 만날 사람들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들을 만나기 위해, 제주로.

늘 그랬듯이 여행이란 건 느닷없이 시작되고 갑작스레 끝이 난다.

새벽 산행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전화기에 엄마 얼굴이 떴다. 이제 막 아이젠과 스패츠를 빌려 신어보려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엄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

뭍으로 오는 비행기는 이미 끊겼고, 다음날 아침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느새 날짜가 바뀌었고 이제 정말 ‘낼모레 마흔’인 날이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빌렸던 장비를 돌려주고 나니 새벽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카메라를 들고 게스트하우스 앞마당, 그러니까 바다 앞으로 나섰다.

30초,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고 서있는 그 시간이 마치 영원같았다. 손이 시리고 귀가 아팠다. 멀리에 별이 빛나고 있었고,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돌아보기로 했던 연말은 외할아버지의 영정을 보며, 문상객들이 노름을 하는 구석에서 졸면서, 울음을 터트린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께 술잔을 올리면서 보냈다.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그 대단한 ‘마흔’이 됐다. 당연히,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새해 첫날이라지만 식구들 모두 늦잠을 잤고, 내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동안 아버지가 떡을 썰었다.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고, 오후엔 동생내외와 함께 할머니 무덤에 다녀왔다. 저녁을 먹고,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조카의 재롱을 보느라 온집안이 시끄러웠다.

그렇게 새해의 첫날이 지나갔다. 다짐 같은 건, 하고 싶은 일 따윈, 해야 할 일 같은 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수없이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중얼거렸다.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정도면 정말 나쁘지 않다…

글쎄, 마흔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란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서른아홉의 마지막 밤과 마흔의 첫 아침이 뭐가 다를까. 여전히 그저그런 날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한 번 흔들고 지나간다.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